만물의 시작이 말씀에 의해 계시되고, 말씀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앞 절에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말씀에 대해 소개되었다.
이제 보이는 세계와 계시된 말씀에 대해 소개할 한 사람을 소개한다.
급격한 시간의 역사가 흘러 예수님의 공생애에 접근하고 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
'보냄을 받았다' 라는 동사는 전통적으로 누군가에게 어떤 메시지나 과업을 맡기다. 부과하다 혹은 위임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이것은 보내는 사람, 여기서는 신적 존재로 부여된 권한 부여로 강조된다.
'...께로부터' 라는 전치사를 사용한 것은 특사의 위임자보다는 특사의 기원을 강조한다.
복음서 기자는 예수님의 공생애에 접근할 때 세례 요한의 증언에서부터 시작한다. 여기에서 염두에 둔 배경은 1세기 역사가 아니라 구원 역사다.
그 구원 역사에서 하나님에게서 위임받은 혹은 "보내심을 받은"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선구자 역할을 했다. 왜 그 말씀에 대한 증언이 필요한가? "이 증언은 그리스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정해진 것이었다."
요한은 빛에 대하여 증언하기 위해 왔다. 이 말씀은 빛이 필요한 사람, 즉 인간의 타락한 상황 조건을 드러내는 것이며,
어둠이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이 인지되어지지 않은 채,
알려지지 않은 채, 이 땅에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셨던 것이다.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이는 선포자의 임무를 명확히 해준다.
그는 증언자이며 증언자는 자신이 말하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인 동시에 그가 알고 있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진리라고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증언할 뿐이다.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이는 선포자의 목적을 말한다.
즉 그의 청중으로 하여금 그 자신이 아니라 다른 것을 보게 하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이 승인하실 메시지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에 대하여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요 16:4)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사 43:10-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로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내가 고하였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 44:18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
요한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자(messenger)가 아닌 그리스도를 숭배한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원했다.
그는 자기 말을 듣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가리키고, 예수님은 청중을 자신에게로 이끈다. 하지만 이 청중은 차례로 증인이 되고,
그들을 통해 다른 사람이 믿음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이 복음서는 이러한 증인 중 한 사람의 증거에 기초한 것이며,
그 목적은 독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고
믿음으로 그 이름 안에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 레슬리 뉴비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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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을 통해 비춰지는 나의 삶?
그것은 증언자의 삶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 삶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까?
하나님을 비추는 삶이 있다. 아니 하나님께서 비추는 삶이다.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삶이요
통상적인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이 드러나는 삶이다.
가짜 정보, 가짜 뉴스가 시대의 흐름을 어긋난 역사로 기록하려 한다.
마치 자신의 존재가 가짜인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헛된 것에 힘을 다하여 수고하며 길들여 진다.
나도 그런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그들의 오류에 흘러내려 가듯이 동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두려워질 때가 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로 그의 삶을 하나님이 비추시는 역사 속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는 자신에게 맡겨진 과업보다 위임을 맡기신 말씀이신 하나님께로 집중한다.
또한 1세기 역사의 중심에서 시대적 관망을 구원 역사로 인식하며 살아간다.
그가 살아온 증언하는 삶은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우리의 삶에 빛을 비추는 삶이다.
요한이 빛에 대해 증언한 것은 그 시대의 어두운 단면 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나의 시대에 조명을 비추는 그리스도의 역사(나라, 구원)로 나를 초대하기 위함이다.
인지하듯이, 이 시대의 세계관은 우상이 비추는 조명에 의해 살아가는 정교하게 비틀어진 화석화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인간의 타락한 상황에서 어둠이 깨닫지 못하는 세계로 고착되어진 것이 인류에게 매인 죄성이 아닌가?
복음은 이런 세계에 반듯이 전해져야만 하는 생명의 빛이다.
절실하지 않은, 목표가 없이 표류하는, 적당한 안정감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그러면서 생물학적 본성으로 내 몰아가는, 삶의 이유가 없는 자연인으로 규정하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에 대해 엄중히 경고하는 메시지가 가슴을 치게 한다.
왜? 그리스도의 생명이 필요한가? 왜, 예수님인가?
다른 이유가 없다고 성경은 단언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내 영광을 드러내려 함이라'(요 16:4)는 말씀 속에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인류에게 구원을 주는 메시지가 그의 시대를 비추는 빛으로 드러났다.
아직 승인되지 않은 복음이 세례 요한을 통해 전해지는 최종적인 구원의 선포가 막 진행되고 있다.
이사야가 전하는 말씀에도 내 삶의 이유를 밝힌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신 자로, 그분의 증인으로 사는 것은 '여호와는 나의 구원자이시다' 라고 명백히 선언하신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는 시대가 아니라 그분을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만함의 극치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분이시다.
또한 나는 그 이름을 믿는, 그 이름 안에서 생명을 얻게 하는 능력으로 오늘 여기 있음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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